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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 공간이 빚어내는 울림, 여백

■ 인문학 특강 시즌4 '여백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 이우환 미술가 CHAPTER 3.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예술 일반적으로 여백이라는 말은 동양화에서는 그리지 않은, 남겨둔 부분을 여백이라고 그래요. 근데 내가 생각하는 여백은 전혀 그런 거 아니예요. 남겨둔 부분이 아니라, 그린 것과 그리지 않은 것이 부딪혀서 거기서 어떤 울림이 나오고 거기서 더 커다란 무언가가, 현상이 일어날 때 그걸 여백현상이라고 해요. 그래서 늘 예를 드는데 종을 치면은 종소리가 나고, 울립니다. 종, 종을 치는 사람, 공간이 필요하고, 또 그 때가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 다 어울려서 거기서 종을 치면은 그 주변에까지 다 울림이 퍼지는 거예요. 울림이 퍼지는 그 전체를, 종과 사람과 또 공간 전체를 포함해서 여백현상이라 그러는 거예요. 저는 그런 현상을 미술에서 나타내보고 싶다, 이런 얘기예요. 작년에 베르사유라는 데서 좀 큰 전람회를 했는데 베르사유 궁전 앞에 앞으로는 원근법으로 된 대단히 유명한 정원이 뻗쳐있습니다. 정원이 뻗쳐있고 저 앞으로는 큰 까나르, 물이 쭉 뻗쳐있고 앞에 잔디밭이 보이고 아주 훌륭한 공간이 있어요. 그러나 너무나 잘 만들어져있는 공간이라서 거기에 무엇을 갖다놔도 그 자체가 잘 보이기 힘들어요. 물론, 내 이전에 베노네라는 친구가 전람회를 한 것도 봤고, 일본에 무라카미라는 애가 전람회한 것도 봤고, 그 외 여러 조각가가 전람회 하는 것도 봤는데 그 나름대로 다 재미있어요. 그러나 갖다 놔봐야 거기서 크게 보이기가 아주 힘들어요. 그래서 많이, 많은 고민을 했는데 내 발상 자체가 작품 자체를 보이는 것이 아니니까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앞에 큰 거리처럼 된 데가 있는데 거기서서 며칠을 왔다갔다가 헤매다가 어느 순간에 떠오른 것이 있어요. 지금부터 24~5년 전에 일본에 마츠모토라는 곳에 일 때문에 갔다가 늦은 점심을 먹고 나오니까 길이 쭉 뻗쳐있는데 길 위로 무지개가 섰어요. 큰 무지개가 아니고 조그만 무지개였어요. 너무 깜짝 놀라서 '저런 것을 어떻게 만들 수 없을까'하는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어요. 그러나 그 다음 순간에 다시는 그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완전히 잊고 있었어요. 그 거리에 서서 여기서 뭘 해야 하나 하고 왔다갔다 하는데 '여기에다 아치를 만들어야 겠다, 무지개 같은 아치를 만들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떠오른 거예요. 그래서 아틀리에 돌아가서 드로잉도 해보고, 이제 또 컴퓨터 하는 친구가 시뮬레이션을 해서 그 장소 사진을 찍어서 그 사진 안에다가 넣어도 보고, 뭐 한 일주일 별 짓을 다해서 대강대강 이제 아이디어가 정착이 됐어요. 그래서 거기에 강철로 만든 무지개를 만들게 됐는데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이거 예전부터 이게 있던 거 아닌가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 거예요. 아치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치를 만들고 거기에 똑같은 길이에 밑에 바닥에 카펫처럼 강철을 깔았는데 강철 위를 지나가면 하늘이 보이고 주변 환경이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치가 보이는 게 아니고 주변 하늘이나 모든 것이 더 열려 보이는, 종래에 느끼지 못한 전혀 다른 광경으로 비치는,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내심, 그런대로 이게 전해지는구나 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내 작품 자체에 대상물을 보이는 것이 아니고 대상 아닌 대상 주변에 열려있는 공간, 공간을 여는 그런 작용을 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어느 정도는 형성이 되는구나 하는 확신을 얻었어요. 그리고 회화의 경우에는 큰 공간에 어느 정도, 그 공간은 만들어 줘야 되고 그런 조성을 시켜야 되는 거니까, 캔버스에다가 점 하나 찍은 것이라든지 혹은 뭐 두 개 찍은 것이라든지 그런 것을 이제 어떻게 시뮬레이션을 하는가, 어떻게 진열하는가에 따라서 공간의 울림이 나온옵니다. 무언가 바이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것은 지금가지 전람회를 여러군 데서 해본 결과 그건 어느 정도 통용이 되는 구나라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을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 이우환 미술가 <여백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풀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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