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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영화같은 인생”…‘은막의 여왕’ 최은희, 신상옥 곁에 영면

김지혜 기자 입력 : 2018-04-19 10:26수정 : 2018-04-1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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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SBS funE | 김지혜 기자] '한국 영화의 전설' 최은희가 92년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하고 영면했다.

19일 오전 9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최은희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향년 92세.

발인에 앞서 열린 영결식에는 배우 신성일, 신영균, 문희 등과 이장호, 최하원 감독 및 영화제작자 황기성 등이 참석했다. 영결식이 끝난 후 가족과 친지, 영화계 동료가 지켜보는 가운데 운구가 차에 실렸다. 고인과의 작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곳곳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발인식은 비교적 경건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최은희는 지난 16일 신장 투석을 위해 자택 근처 병원을 찾았다가 별세했다. 지난 2006년 전 남편인 故 신상옥 감독이 세상을 떠난 뒤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이미지지난 3일간 빈소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영화인의 행렬이 이어졌다. 임권택, 이장호 감독, 서울극장 고은아 대표,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배우 신성일, 한지일, 윤일봉, 정혜선, 문희, 태현실, 김창숙 등이 잇따라 빈소를 찾았다.

이장호 감독은 "한국 영화의 한 세기가 끝이 났다는 생각이 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960년 신상옥 감독이 연출하고, 최은희가 주연한 '로맨스 빠빠'로 영화계에 데뷔한 신성일은 폐암 투병 중에도 빈소를 찾아 "한국 영화가 가장 좋았던 시절에 최고의 활약을 펼친 배우"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최은희는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지난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새로운 맹서'(1947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상록수'(1961) '빨간 마후라'(1964) 등 수많은 영화에서 활약했다. 1950~60년대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원조 트로이카'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미지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만나 결혼했다. 이후 두 사람은 '꿈'(1955), '젊은 그들'(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자매의 화원'(1959), '동심초'(1959) 등 수많은 작품을 함께 하며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고인의 인생은 영화만큼이나 파란만장했다. 신상옥 감독과 이혼한 후 1978년 홀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다. 몇 개월 후 신상옥 감독도 피랍돼 두 사람은 북한에서 재회했다. 

북한에서 17편의 영화를 찍었고, 국제영화제에서도 활약했다. 최은희는 북한에서 찍은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한국인 최초 해외영화제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두 사람은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에 방문했다가 미국대사관을 통해 망명에 성공했다. 이후 해외에서 10년이 넘는 망명 생활을 이어가다 지난 1999년 영구 귀국했다.
이미지최은희는 감독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을 연출했고, 연출 및 주연을 맡았던 '민며느리'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를 향한 열정은 노년에도 시들지 않았다. 건강이 악화되기 전인 2001년에는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했고, 2002년에는 뮤지컬 '크레이지 포 유'를 기획, 제작했다. 또한 지난 2012년에는 2회 아름다운 예술인상에서 공로예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故 최은희의 장지는 안성천주교공원묘지다. 앞서 세상을 떠난 신상옥의 묘지 역시 이곳에 있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입력 : 2018-04-19 10:26 ㅣ 수정 : 2018-04-1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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