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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잘 나가던 화장품 로드숍, 어쩌다 추락했나?

조슬기 기자 입력 : 2019-02-07 16:01수정 : 2019-02-08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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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전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서울 중구 명동8길에는 화장품 로드숍으로 유명한 네이처리퍼블릭이 있습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한국인지 중국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중국인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여기저기서 중국어로 판촉행사를 하는 점원들이 넘쳐나던 곳입니다. 국내 젊은 소비층도 다양한 세일 행사를 따라 매장안을 채웠었는데, 며칠 전 방문해보니 '여기가 거기 맞나?' 할 정도로 너무나도 한산했습니다. 인근에 위치한 미샤의 메가스토어도 손님이 없어 휑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넓은 매장 안은 고객 보다 점원수가 많다고 느낄 정도였고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은 아예 출입을 막아놨습니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아서일까요? '한 집 건너 화장품 가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았던 명동의 화장품 가게들은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사드 보복 조치를 점진적으로 철회하고 있는데도 한 번 끊긴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좀처럼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경기침체 속에 내국인들의 발길도 뜸해지면서 사업을 접은 곳들이 많다는 게 인근 상인들의 공통된 답변이었습니다.
이미지이런 현상은 명동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강남역 일대를 비롯해 서울 시내 주요 번화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던 화장품 로드숍들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는데요. 불과 2~3년 전 전국적으로 천 곳이 넘는 매장을 보유하고 있던 더페이스샵과 이니스프리는 현재 8백여 곳으로 줄었고, 8백여 곳이 넘던 네이처리퍼블릭이나 미샤, 토니모리도 매장수가 6백여 곳으로 감소했습니다.

1세대 로드숍 화장품 기업 스킨푸드는 지난해 10월 법정관리까지 신청했습니다. 스킨푸드의 법정관리 신청은 다른 로드숍 브랜드 업체들의 위기감으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의 사드보복이나 경기침체 여파와 같은 표면적인 이유보다 다양한 화장품 브랜드를 비교해보고 구입하는 요즘 젊은층의 소비 패턴이 더 무섭다고 말합니다. 올리브영이나 롭스처럼 여러 가격대의 다양한 제품을 구비한 헬스앤뷰티(H&B)숍들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겠죠. 여기에 화장품 유통과 소비 구조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는 점도 로드숍 매장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이를 두고 자업자득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사업 초기 만 원 안팎의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품질을 무기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에는 성공했지만 이후 매장 수를 늘리며 몸집을 키우는 데 급급했고 과도한 할인 경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내렸다는 뼈아픈 진단도 나옵니다. 특히, 업체마다 짧게는 사나흘, 많게는 일주일에 한번 꼴로 할인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소비자들로 하여금 '대체 적정 가격이 얼마이기에 이렇게 많이 할인 행사를 진행할까?'라는 생각을 갖게 했고, 결국 가격 불신을 자초했다는 것입니다.

고객들 사이에서는 '로드숍 화장품을 제값 주고 사면 바보'라는 인식이 퍼져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드숍 브랜드들의 할인 이벤트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여기에 특정 상품이 히트를 치면 너도나도 뒤따라 출시하는 제품 베끼기 관행과 일부 제품을 중심으로 고가 마케팅을 펼치면서 스스로 정체성을 무너뜨렸다는 진단도 나옵니다.

'가성비' 좋은 화장품이라는 가장 큰 경쟁력을 외면하고 빠르게 변하는 소비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 채 혁신을 소홀히 한 대가가 로드숍의 추락으로 이어진 건 아닐까요?
    

입력 : 2019-02-07 16:01 ㅣ 수정 : 2019-02-08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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